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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3-05 19:46
13_03_03 사순 제3주일(다해)교중미사 신부님 강론말씀
 글쓴이 : 신정동성당
조회 : 1,010  
사순 제3주일(다해, 신정동 성당)
2013년 3월 3일
루카 13.1-9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이 이집트 치하의 억압과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해방과 구원의 역사에
바로 ‘나는 있는 나다’ 하신 하느님이 계심을 고백합니다.
그 하느님은 저 높은 하늘에 좌정하고, 인간의 희로애락을 관망하고 즐기는 분이 아니라,
당신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고통을 아는 분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하느님은 억압과 고통의 이집트 땅에서 당신 백성을 구하여,
살 곳, 곧 좋고 넓은 땅으로 데리고 가려고 백성들 가운데에,
역사 한 가운데에 내려오셔서 당신 백성과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1독서는 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2독서의 말씀처럼, 자주 하느님을 잊고,
그 대신 “악을 탐냄으로써”  좋고 넓은 땅에 들어가기보다는 광야에서 죽어 널브러집니다.
똑 같은 영적 양식을 먹고, 똑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음에도,
이집트에서 느꼈던 배부름을 동경하며, 자유와 해방의 소중함을 잊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자유와 해방의 소중함을 잊는다면,
갈릴래아 사람들의 죽음, 실로암 탑이 무너지면서 당한 열여덟 사람의 죽음은
비교도 안 될 만큼의 큰 재앙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결코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말씀이 아니라,
준엄한 경고의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첫째, 다른 이들에게 고난과 고통을 안기고, 울부짖게 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둘째, 악을 탐냄으로써 다른 이들의 자유와 해방을 침탈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셋째, 만일 회개하여 함께 살 길을 찾지 않으면 공멸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고통에 내몰았다면, 오늘날의 파라오는 극소수의 거대 자본입니다.
이 거대 자본은 정치권력과 법도 손에 넣었고, 지식사회와 언론도 장악했고,
하다못해 종교도 쥐락펴락하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파라오의 교묘하고 치밀한 꾐에 빠져 일신과 가족의 안위를 꾀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고난과 고통을 안기고 울부짖게 하는 일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말이 좋아서 경쟁이지, 서로를 죽이라는 명령인데도
그들의 명령에 저항할 기력마저 빼앗기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명령을 거스를 수 없어서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그 경쟁에 뛰어듭니다.
 
슬프게도, 그러는 사이 선의의 뜻을 갖고 평화를 실현하려는 사람들,
양심의 명령에 따라 옳은 길을 가려는 사람을 감시하고, 감옥에 가두고, 고통을 가함으로써,
자유를 박탈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일이 횡행합니다.
자본과 권력과 폭력이 우리에게 굴종을 강요하고 있음에도,
마치 이스라엘이 이집트 노예 살이 하면서 먹었던 고기 몇 점을 그리워했듯이,
우리는 배부른 삶을 동경합니다.
자유니, 평등이니, 정의니, 사랑이니 하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상한 가치는 쓰레기처럼 내팽개치고,
성장이니 경제부흥이니 일류 선진국이니 하는 구호에 솔깃합니다.
파라오가 노예 생활하는 이스라엘에게 바랐던 것과 똑 같습니다.
오늘날 탐욕스러운 소수의 거대 자본은 우리에게
고기 몇 점 더 주고 따뜻하게 잘 수 있게 해주겠으니,
사람으로서 사람다운 모든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운명을 내게 맡기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죽어 널브러진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공멸을 걱정해야 할지 모릅니다.
실제 우리 사는 세상은 소수의 탐욕이 절대다수를 빈곤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불균형의 심각하면 실로암 탑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역사는 이러한 심각한 불균형으로 세계대전이 벌어졌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앞으로의 세계대전은 전의 두 번의 전쟁과는 달리
이른바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가진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한 전쟁이 될 것이므로,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영적인 의미, 상징적인 의미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발걸음을 되돌리지 않으면,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의
성장주의, 소비주의, 경쟁주의, 그리고 무력의 팽창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공멸은 실제 우리가 직면할 가까운 미래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성장을 멈추고 나눔을 찾아야 하며,
소유와 소비를 멈추고 비움과 버림을 찾아야 하며,
경쟁을 멈추고 공생을 찾아야 하며,
무력의 팽창을 멈추고 비폭력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모두가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은 정의를 펼치시고, 억눌린 이 모두에게 공정을 베푸시네.  당신의 길을 모세에게,
당신의 업적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네.”
 

최건호 야고보 13-03-09 18:01
 
고난 중의 예수님의 무거운 십자가 만큼이나 무거운 강론의 말씀에 우리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결코 우리에게 위안 만을 주는 말이 아니라 준엄한 (경고) 말씀"
으로 받아 들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닌.다른 누구가  하여야 만 되는 일로 방관 하는 것이 사실 입니다.

나눔 으로서 서로 돌보며 공생하는 길을 이행 하여야 만 되겠다는 심증이 더욱 굳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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