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신앙마당 > 신부님 강론


 
작성일 : 13-03-05 19:39
13_02_17 사순 제1주일(다해)교중미사 신부님 강론말씀
 글쓴이 : 신정동성당
조회 : 1,220  
사순 제1주일(다해, 신정동 성당)
2013년 2월 17일
루카 4,1-13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죽음에 동참하는 거룩한 사순시기입니다.
 
오늘 1독서의 신명기 말씀은 하느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보잘것없이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던 이스라엘이
강대국 이집트에서 노예 살이 하며 겪었던 심한 노역과 학대와 괴로움,
고통과 불행과 억압에 대해
초월하거나, 외면하거나,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
백성의 부르짖음을 듣고, 고통과 불행을 보며, 손길을 내밀어 구해내시고,
그 보잘 것 없는 이들이 살아갈 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은 사람이 다가갈 수 없는 드높은 하늘에 앉아 인간사와 무관한 신이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 그리고 인간사와 역사에 깊숙이 개입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완전무결한 절대자가 아니라,
악마의 유혹을 받는 분이심을 오늘 복음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유혹이란 것들을 살펴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것들입니다.
빵에 대한 유혹, 권세와 영광에 대한 유혹,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유혹,
그런 유혹들은 언제나 어느 시대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끈질기게 다가오는 것들입니다.
 
2독서의 바오로 사도께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인종에 차별 없이 누구나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모든 사람이 닮아야 할 참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한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오늘 말씀에 비추어 성찰합니다.
 
우선, 우리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믿으려 하는 하느님을 살펴봅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 세상 사람들의 삶과 무관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일은 세상일이고, 하늘의 일은 하늘의 일이라고 철저하게 구별합니다.
그런 생각은 곧 종교 혹은 교회는 세상일에는 관심을 두지 말고,
영적인 일, 초월의 문제, 사후의 일 같은 데에만 신경을 써야한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왜 신앙생활을 하느냐고 물으면
80% 이상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데,
 
이는 세상살이에서 마음의 평화나 행복이나 기쁨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신앙이란 잠시 세상일을 잊고, 혹은 세상일은 제쳐두고,
잠시나마 천상의 위로를 받으려는 편한 여가활동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사람이 중병에 걸렸는데, 진단도 않고, 수술도 않고, 치료도 받지 않으면서,
진통제 몇 알 먹으며 하루하루 버티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그리스도교가 경전으로 삼는 성경에서
하느님께서는 세상일에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그것도 보잘 것 없는 이의 절규를 듣고, 그들의 고통을 보며,
그들에게 손길을 펼쳐 해방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이웃의 노역과 절규, 학대와 괴로움,
고통과 불행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도,
천상의 하느님을 찾는 가운데 잠시의 거짓 위로를 얻으려 합니다.
엇박자도 그런 엇박자가 없는 셈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사를 듣고 보고 해방하시는데,
하느님을 찾고 찬양하는 이들은 인간사에 귀를 막고 눈을 감으며,
피안의 세계로 도망치니 말입니다.
 
둘째, 오늘 복음은 그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닮아야 할 모습,
참 인간의 모습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빵을 손에 넣으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돌을 빵으로 만드는 재주까지 부립니다.
고관대작의 재산형성과정을 보면 참 많은 분이 땅을 뻥튀기해서 재산을 불렸습니다.
어제도 땅이고 오늘도 땅이고, 내일도 땅일 뿐인데,
그 땅에다 값어치를 매겨 거래하면서 수천만, 수억의 이익을 내는 재주를 부리고 있습니다.
더 많은 빵을, 더 많은 돈을 손에 넣으려고, 땅을 사고 팔려합니다.
부동산 시장에서의 거래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 기울입니다.

권세와 영광을 얻기 위해서라면 양심이고, 염치고, 윤리 도덕이고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듭니다.
자유니, 평등이니, 정의니, 인류애니 하는 숭고한 가치 따위는
아예 일상의 언어생활에서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움의 기준은 오로지 권세와 영광이기에,
다른 사람의 처지를 살필 마음도, 하늘과 땅과 강과 바다를 살필 필요도 없습니다.
오로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착취하고 빼앗고, 강탈하고 소비하는 것을
능력과 성공, 권세와 영광의 길이라고 여길 뿐입니다.
그럴듯하게 이를 신자유주의라 이름하고, 세계화라 치켜세웁니다.
그리하여 사람이면서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하느님이 되려는 욕망을 채우려 합니다.
복음은 이를 ‘악마의 유혹’이라는 단 한 마디로 단죄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 ‘악마의 유혹’에 영혼을 팔고,
삶을 내맡기는 것을 두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혹시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에게는 실패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물러간 악마가
혹시 오늘날 그 예수님을 따른다는 무리들, 곧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다시 찾아와
그 뜻을 이루어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합니다.
 
“주 하느님, 이 광야에서 간청하는 교회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주님의 팔을 펼치시어 말씀의 빵으로 저희를 기르시고,
성령의 힘으로 감싸 주시며,
저희가 악마의 끈질긴 유혹을 이기게 하소서.” 아멘.
 

최건호 야고보 13-03-09 23:10
 
세상만사.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 이다.
라는 격언(格言)도 귀에 익히 젖어 살아 왔지만. 정작 여러 면에서 부실 함이 많으니.

하느님의 뜻을 땅에서도 이루시고자 우리 죄를 대신하여 고통을 감내 하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낌니다.

자.신.이 다소 나마 새로와 지기 위해서도 이번 사순시기에 근신 하면서
깊은 성찰로 이어 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