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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3-05 19:33
13_02_10 설(다해) 신부님 강론말씀
 글쓴이 : 신정동성당
조회 : 897  
설(다해, 신정동 성당)
2013년 2월 10일
루카 12,35-40

나는 ‘나’ 홀로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태어나는 것도 ‘나’ 스스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부모가 있어야 ‘나’라는 사람이 비로소 있게 된다. 
내 부모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가 있었기 때문에, 뿌리인 조상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이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라는 사람이 있어야 나 다음의 세대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나’는 부모, 형제, 친지, 조상이 있어 있게 된 것이고,
미래의 누군가를 있게 한다. 
 
과거와 미래의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세상의 수많은 동식물, 하다못해 미생물과 무생물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  
이를 사람들은 인간의 ‘사회성’ 혹은 ‘공동체성’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요즘 이 ‘사회성’과 ‘공동체성’이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나’만 알고, 남은 배려하지 않는 태도,
‘나’만 살고, 남은 죽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태도,
조금 범위를 넓혀서, ‘우리 동네, 우리지역, 우리나라’만 알고,
‘다른 동네, 다른 지역, 다른 나라’는 생각하지 않는 태도,
‘우리’만 살고, 남은 죽어도 괜찮다는 태도,
이런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 
이를 ‘자유’라는 말로, ‘경쟁’이란 말로, ‘세계화’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자기만 살고, 남은 죽거나 살거나 개의치 않아도 된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나만 살려고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자기만 살려고 할 것이고,
이는 살기 위한 투쟁을 불러온다.
우리 동네, 우리지역, 우리나라만 살려하는 것처럼,
남의 동네, 남의 지역, 남의 나라도 잘 되려고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죽기 살기의 투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어느 사상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 했고,
‘인간은 인간에게 서로 늑대다’라고 묘사했다. 
그런 세상을 ‘야만의 상태’라고도 했다.
 
설은 ‘사회성’과 ‘공동체성’을 기억하고 회복하려는 다짐을 새롭게 하는 날이다. 
함께 살 길을 찾으려고,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며,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는 것이다. 
시민국가 시대에, 더구나 세계화 시대에,
함께 살 길을 찾는 이 일을 개인단위, 가족단위, 지역단위 차원에서만 찾을 수가 없다. 
국가차원에서도 세계 공동체 차원에서도 ‘지구인이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국가의 각 분야의 지도자들의 책임이 그만큼 무겁다. 
동시에 지도자들의 사리사욕과 불의와 부정이
과거보다 훨씬 위험하고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 
그들이 사리사욕에 빠지지 못하도록
한 사람 한 사람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예전보다 더 절실하다. 
설, 한 해를 시작하며, 공동체성, 사회성을 회복하도록, 우리 모두 마음을 새롭게 하자.
함께 사는 세상을 건설하는데, 그리스도인이 앞장서자.
그것이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이 갖는 책임이다.
 
“하느님, 저희가 조상들을 기억하며 화목과 친교를 이루게 하시고,
언제나 주님의 뜻을 따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아멘
 

최건호 야고보 13-03-09 23:44
 
현 사회.
사회 속에서 의 나(저) 에게.
자문(自問)하여 본다.

존재가치(存在價置)에 충실(忠實)한가?
미량(未量)에 불과하다.
그러면 과연(過然)언제쯤 성숙(成熟) 될까.
암담 하다.

그렇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신 은혜를 헛되이 하지않게 하기 위해서도
성실하게 매사에 노력 하여야 마땅하다 는 결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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