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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2-08 15:39
13_02_03 연중 제4주일(다해) 교중미사 신부님 강론말씀
 글쓴이 : 신정동성당
조회 : 929  
연중 제4주일(다해, 신정동 성당)
2013년 2월 3일
루카 4,21-30
 
예레미야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의 침략을 받고,
곧 이어 바빌론의 지배를 받는 과도기의 시대였습니다.
정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라는 망하고, 백성은 흩어져 살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이 때 기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강대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성전에 아시리아의 신들의 상을 세워놓는 등, 하느님을 포기하는 종교적 타락에 이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의 선택은 현실적으로 타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예언자는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들에 맞섭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미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살해의 위기를 맞기까지 합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의 해방과 구원이
회당에 있는 사람들, 곧 유대인이라는 혈통을 가진 이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한 이들, 억압받는 이들,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모두에게,
곧 시렙타의 과부나 시리아 사람 나아만 같은
이방인에게도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지난주에 이어서, 분열되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교회답지 않은 코린토 교회를 훈계한 다음 오늘 서로 사랑할 것을 당부합니다.
가장 큰 은사로서 열심히 구해야 할 것이 바로 사랑임을 밝힙니다.
 
리 모습을 살펴보게 됩니다.
우리는 예레미야 시대처럼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에 돈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시대에 놓여 있습니다.
이를 세상에서는 시장만능주의라고 하고, 우리 교회 교리서는 ‘시장의 우상’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처럼 자본, 특히 금융자본이 막강한 위력을 떨친 적이 없습니다.
금융시장이 재채기를 하면, 이를 만성적 금융위기라고 하는데,
실물시장, 곧 보통의 사람이 사는 세상은 쓰나미를 겪습니다.
갑자기 해고를 당하고, 집을 잃고, 물가는 치솟고, 부채에 허덕이고, 삶은 고통스러워집니다.
정치도, 사회도, 교육도, 언론도,
그리고 법과 종교마저도 앞을 다퉈가며 이 자본을 신처럼 섬깁니다.
그리고 온 인류는 자본을 섬기라고 전방위에서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우니, 경쟁이란 말로, 성장이란 말로 포장할 뿐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 시대, 하느님 대신 아시리아 제국의 신상을 세워놓고
그 앞에 절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포기하고 금권을 쫓는 대가는 정의의 실종이며, 도덕과 윤리의 붕괴입니다.
이제 백성의 지도자가 되려면
부정과 불의, 불법과 탈법의 능력을 갖춰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를 바라잡고 꾸짖어야 할 언론과 지식인은
“그렇게 엄격하게 도덕성을 따졌다가는 국가를 위해 봉사할 인재를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느냐”
는 식으로 교묘하게 국민을 현혹합니다.
아예 드러내놓고 우리에게 양심이나, 염치나, 수치심이라는 것을 내다버려도 좋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의 악마성을 이야기했다가는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추방되기 십상입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해도, 사회적 약자도 같이 살아야 한다고 외쳐도,
자본의 횡포를 고발해도, 제 책임을 포기하고 오히려 자본에 충실히 봉사하는
정치, 교육, 언론과 종교의 지도자들을 꾸짖어도,
화를 잔뜩 내며,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고, 선량한 시민을 분열시킨다며,
혹은 심지어는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며 매도하면서,
마치 상종해서는 안 될 악마로 만들어 집단으로 따돌리기기까지 합니다.
심지어는 터무니없이 감옥에 가두기까지 합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더라도, 비웃음만 받을 뿐입니다.예레미야도,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고립무원의 삶을 자처하셨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신앙인이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도 그럴지 모릅니다.
시대의 흐름이 어둠으로 치달을 때, 신앙인은 어리석게 자신을 태워 횃불이 되어야 합니다.
시인은 하느님께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께 피신하오니,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 의로움으로 저를 건져 구하소서. 제게 귀를 기울이소서. 저를 구원하소서. 아멘.”
 
 
 

최건호 야고보 13-03-10 08:58
 
우리사회를 다양(多樣)하게 분열(分裂) 시키는 데는 유감 스럽게도 언론사 들의
지배적인 역활이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수가  없습니다.

일부 우리 신앙인 들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 리라 봅니다.
우리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왜? 그토록 무엇을. 부르짖다 처참하게 숨을 거두셨는 가를
우리는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 고 생각 됩니다.

올바른 우리 사회를 구축 하는데는 우리 신앙인 들의 몫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수방관(袖手傍觀)도 모자라 분열 되는 일에 앞장서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니
더욱 심각성이 있음 입니다.
 
"강건너 불 구경"
남의 탓 으로 이루어 지는 일 만이 아니고 연결 시켜보면 바로 "내탓" 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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