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신앙마당 > 신부님 강론


 
작성일 : 13-02-08 15:20
13_01_27 연중 제3주일(다해) 교중미사 신부님 강론말씀
 글쓴이 : 신정동성당
조회 : 1,130  
: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제3주일(다해, 신정동 성당)
2013년 1월 27일
루카 1,1-4; 4,14-21
 
오늘 1독서 느헤미야서는, 지난 주일 이사야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의 유배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직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1장 7절에서 느헤미야는 “저희가 정녕 당신께 못되게 굴었습니다.
당신께서 당신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규정과 법규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고 고백하며,
그리고 그 때문에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 이스라엘이
이민족들 사이로 흩어져 모진 고생을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방인 왕의 마음을 움직여 이스라엘은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오고, 느헤미야 총독은 파괴된 예루살렘 성벽을 보수합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이 광장에 모여
율법학자 에즈라가 읽어주는 율법서를 종일 듣습니다.
그리고 백성은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울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하느님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 곧 율법을 충실히 지킬 것을 다짐합니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단순한 율법을 넘어
당신의 사명, 당신을 이 세상에 파견하신 하느님의 뜻을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여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바로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 하고 분열되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치욕스럽게 하는 코린토 교회를 엄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의 참 모습을 무엇인지를 밝힙니다.
분열된 교회를 놓고는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가르치며,
부자가 가난한 이들을 차별하는 것을 놓고는 “여러분은 먹고 마실 집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하며 꾸짖습니다.
 
오늘 하느님의 말씀을 놓고 우리 교회의 모습을 성찰하게 됩니다.
첫째, 1독서 말씀을 놓고, 우리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이요, 토대로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너무나 쉽게 봅니다.
교회도 세상의 여러 조직과 다를 바 없이 개인이나 집단의 욕망을 채우려는 조직쯤으로,
혹은 개인적인 마음의 평화를 충족시켜주는 여러 단체 가운데 하나쯤으로,
혹은 뜻 맞는 이들끼리 동아리 활동 하는 여가단체쯤으로 여기는 신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위안거리로 해석할 뿐입니다.
같은 하느님 말씀을 공동체 차원과 역사와 시대의 차원에서 성찰하는 것을 지독히도
불편하기 여기는 교우들이 너무 많습니다.
 
둘째, 복음 말씀을 놓고, 우리 교회는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이웃으로 여기며,
이웃의 아픔과 고통과 한을 풀어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는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너무나 쉽게 봅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 억압받는 이들, 부당하게 인권이 침해당하는 이들,
그들과 고난의 길을 가기보다는,
쉬운 길, 편한 길, 영광의 길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너무 많습니다.
가난한 사람, 억압받는 사람, 인권을 유린당하는 사람에게 동정심을 보이고,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빵을 주는 것은 신앙의 행위이고,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 무엇이 사람을 지속적으로 억압하는지,
그 근본원인과 부조리한 사회제도를 개선하려는 일은
아예 교회가 할 일이 아니라고 믿는 분이 너무 많습니다.
 
셋째, 2독서의 말씀을 놓고, 우리 교회는 신분이나 성별, 그리고 인종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고
모두 하느님의 백성으로 한 몸을 이루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너무나 자주 봅니다. 허황된 거짓 이념을 갖고 손가락질하기 일쑤고,
부자성당 가난한 성당으로 대놓고 구별하고, 같은 교회 안에서도 소유재산과 신분 정도에 따라
구별하여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여성을 차별하는 일은 세상이나 교회나 그다지 차이가 없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교가 처음 생기고 요즘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것은 바로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의 차별
곧 인종에 의한 차별, 종과 자유인의 차별 곧 신분에 의한 차별을 철폐한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새로운 형태의 차별과 분열의 벽이 세워졌고, 점점 견고해지고 있습니다.
빈부의 차별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차별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마치 교회의 일이 아닌 것처럼 믿기까지 합니다.
 
교회의 본래의 모습, 신앙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는 미사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빈말이 되지 않아야겠습니다.
 
“하느님, 임금이시 며 예언자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으니,
교회 안에 울려 퍼지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저희가 하나 되어
해방과 구원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아멘.
 
 

최건호 야고보 13-03-10 10:09
 
시대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현상들이 보이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숭상 하고자 하는 우리들 주변 에서도
일부 구성된 사사 로운 단체로 하여금
올 곧은 가르침을 따르려는 선도의 기회를.
우회적으로 유도하여 불미 스럽게도 신앙에 위해를 초래하는 사례가 있음을 엿볼수가 있읍니다.

심지어 습관적 으로 사제를 감히 능가 하려는 발언을 예사롭게 일 삼는 일부 신자들을 접할 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성당.교회에서 그 무엇을 더 얻을것이 있는 것인지 - .
참으로 납득이 잘 안되는 예가 더러 있읍니다.

섣부른 주장을 강하게 펼치시고 계신분 들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신앙을 모르던 가장 어린 초등학교 시절 얻은 말.
철학자 쑈크라테스 가 하였다는 말을 기억 하여주실 필요가 있읍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진실히 믿는 참다운 우리 신앙인 이라면
개인의 이익 만을 교묘하게 구상 하는데 몰두 할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하느님의 뜻.구세주 의 참된 뜻이 무엇인지를 만분의 일이라도
한번쯤 생각하면서 우리 신앙인들 만이라도 신앙인 답게 한뜻 한 목소리로
하느님의 뜻을 거역 하는 일에는 솔선수범을 삼가 하도록
우리 서로 노력하여 분열 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합심 하여야 되겠읍니다.

항상 말씀을 따라 노력 한다 하여도 부족한 것이 우리들의 신앙심 입니다.
하물며-.

속담에 -가랑 비에 옷 젖는다 - 고 하였읍니다.
따로 공부가 없다면 우린 사제의 강론의  말씀을 경청 하여야 되겠읍니다.

따라 가도 가도 끝은 안 보이지만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신앙.
지나친 사리사욕 부끄러운줄 아는 신앙인 으로서.

이번 사순시기의 예수님.
우매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아무런 이익없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기억 하면서
그릇된 사고방식이 반복 되지 않도록.
각오을 새롭게 할 필요.를 갖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