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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18 21:56
12_10_14 연중 제28주 (나해) 교중미사 신부님 강론말씀
 글쓴이 : 신정동성당
조회 : 1,057  
연중 제28주일(나해)
2012년 10월 14일(신정동, 박동호신부)
마르코 10,17-30
 
 
오늘 우리가 들은 하느님 말씀은 우리가 삶을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어야 하는지,
세상을 얼마나 옳은 모습으로 가꾸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1독서의 지혜서는 한 개인과 한 사회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이 지혜임을 가르칩니다.
지혜란 불가에서는 최고의 깨우침을 말하는 것이며,
서양에서는 만물의 근원과 이치에 도달하는 것을 말하며,
그냥 일상에서는 슬기로움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지혜를 구하는 대신에, 편협한 지식을 쌓느라 모두 심혈을 기울입니다.
그 지혜를 구하는 대신에, 크든 작든 권력 곧 왕좌에 오르려 저마다 사투를 벌입니다.
그 지혜를 찾는 대신에, 금과 은 곧 재산을 모으려고 온 힘을 다 쏟아 붓습니다.
그 지혜를 희망하는 마음보다는, 육체의 건강과 미모를 사랑하여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처지를 살펴봅니다. 삶은 죽느냐 사느냐 싸움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혈투가 벌어지는 싸움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헛된 이기심의 욕망만이 어지럽게 춤을 춥니다.
이 싸움판에서는 한 순간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한눈을 팔았다가는 싸움에서 져 권력을 잃고 재산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싸움판에서는 한 순간도 고요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눈은 사방팔방으로 어지럽게 돌아다녀야만
그나마 하루를 연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최고의 깨우침을 향해,
완성을 향해 용맹정진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오히려 자신의 삶을 파괴하고 세상을 어지럽히느라 소중한 시간을 소모하는 형국입니다.
 
복음에서는 어떻게 용맹정진할 수 있는지,
그 길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를 가르칩니다.
그냥 그저 그런 사람이 있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오늘 복음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차이는 고작 2%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제자들이나, 어떤 사람이나, 살인하지 않아야 하고,
간음하지 않아야 하고, 도둑질하지 않아야 하고,
거짓 증언을 하지 않아야 하고, 횡령해서는 안 되고,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쯤은
잘 압니다.
험악한 세상일수록,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몰락하는 사회일수록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에 불과한 이 질서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내팽개칩니다.
능력이 있다면, 거짓 증언을 해도 괜찮고, 횡령해도 괜찮고,
도둑질해도 괜찮은 세상이 되고 맙니다.
우리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꼭 그 모양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정도의 질서는 예수님을 따르건 따르지 않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물론 아는 것과 지키는 것하고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크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신을 따르려거든 그 모든 상식과 질서뿐만 아니라,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와서 당신을 따르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럴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아니 거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합니다.
특히 오늘 우리 사회처럼 무자비하고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곳간을 비워 나누기보다는 더 많은 곳간을 지어
그 곳에 자기만의 재물을 쌓아놓으려는 사회에서,
오죽하면 가지지 못한 것이 마치 죄가 되는 우리 사회에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고작 과거 성경 속에나 있는 죽은 언어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나 아닌 사람에게나 같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 가운데 으뜸이라는 베드로는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 있게 나선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리고,
당신을 따른 대가가 부귀영화의 영광이 아니라, 현세의 박해라고 합니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예수님의 제안입니다.
나를 따라라, 그러면 너희는 박해를 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는 셈입니다.
당연히 복음에 등장한 어떤 사람은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제자들도 사실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혀 수난을 겪고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잡아떼었고,
유다 이스가리옷은 예수님을 팔아넘겼고, 다른 제자들은 모두 도망가 버렸습니다.
 
지혜에 이르는 길, 예수님을 따르는 길, 복음을 따르는 길은
곧 죽음의 길이기에 결코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오히려 왕좌와, 금과 은의 재산과 건강과 미모를 쫓는 것이 훨씬 기쁘고,
보람 있으며, 뿌듯하고, 그래서 그 길을 저마다 쫓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들은 2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그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
우리가 만들어놓은 이 세상에 대해, 셈을 해야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이 말을 역사의 심판, 혹은 역사의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그딴 것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하느님께 셈을 한다는 것,
역사의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그가 일구어놓은 세상에 대해 후세가 평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사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왕좌와 금과 은, 건강과 미모를 쫓아 자신의 삶을 어지럽히고,
세상을 허물어뜨리는 어리석음 대신에,
만물의 이치와 근원을 찾는 지혜로운 사람, 슬기로운 사람입니다.주님,
 
주님의 넘치는 은총으로 언제나 저희를 이끌어 주시고 함께 하시어,
저희가 좋은 일을 하는 데에 지치지 않게 하소서. 아멘.
 
 

최건호 야고보 12-10-19 23:16
 
" 하느님" 께서는 우리를 옳 바르게 살아 가도록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랑하여 주시고 잘 못함도 용서 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그렇다고 방종 함이 습관 되여서는 아니 되겠읍니다.

" 하느님' 음성을 들은적은 없었지만
분명한 말씀으로 살아 계시고 지켜보고 계심을 알수 있읍니다.

" 지혜에 이르는 길.예수님을 따르는 길.복음을 따르는 길은 쉽지는 않습니다.
세상을 허물어 뜨리는 어리석음 대신에 만물의 이치와 근원을 찾는 지혜로운 사람."
슬기로운 사람이 되도록 "하느님 말씀" 안에서 역시 지혜를 찾는데 신공 을 드려야 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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