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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29 18:36
12_09_16 연중 제24주일(나해) 교중미사 신부님 강론말씀
 글쓴이 : 신정동성당
조회 : 1,037  
연중 제24주일(나해)
2012년 9월 16일(신정동, 박동호신부)
마르코 8,27-35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냐’는 말이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이 말을 자신의 부덕함과 유한함, 그리고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겸손함과 너그러움의 필요성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할 것입니다.
사람이란 아무리 완전한 모습으로 자신을 가꾸더라도 어느 구석엔가 부족함이나
허물이 있고, 내가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고,
그래서 서로 타인의 허물에 대해 너그러워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이 누군가를 단죄할 때,
흠결을 찾아 얽어매거나 제거할 때 사용하는 것이라면, 무서운 뜻을 갖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잡아넣을 수 있다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개한 사회일수록 권력을 휘두르는 집단이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거나 고분고분하지 않은 사람을 단죄하는 방법이
바로 이 ‘먼지떨이’식입니다.
협박을 하기 위해서 그 사람과 주변 사람의 행적을 샅샅이 다 뒤집니다.
회유를 하기 위해서도 사돈의 팔촌까지 샅샅이 털어봅니다.
매수를 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타협을 하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먼지, 곧 약점을 잡아서 협박하고, 회유하고, 매수하고,
타협을 강요하고, 그래도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그것을 폭로해서 대중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도록 교묘하게 공작을 합니다.
털어보니 너도 까마귀에 불과한데, 괜히 백로인척 하지 말라는
협박이자 경고인 셈입니다.
이쯤 되면,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의 경계는 의미를 상실합니다.
문명과 야만을 가늠하는 척도인 ‘도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바로 미개한 사회, 도덕이 땅에 떨어진 사회에서
자신이 겪어야 할 고초를 밝힙니다.
까마귀 노는 데 끼어 같이 놀지 않는 대신에, 주 하느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그 길을 걸으면, 까마귀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매질을 하고, 수염을 뜯고, 뺨을 때리며 모욕과 수치와 수모를 안깁니다.
 
그러나 예언자 이사야는 비록 저들이 털어 먼지가 나더라도,
그것 때문에 저들이 뺨을 때리고 모욕을 주더라도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고,
하느님께서 도와주시고, 하느님께서 귀를 열어주시니,
기꺼이 하느님의 길을 가겠다는 결의를 밝힙니다.
 
복음의 예수님은 이사야가 밝힌 고난 받는 하느님의 종의 길을 걷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할 그리스도로서 그분은 많은 고난을 겪고, 배척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다는 것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를 협박하고 모함하고 단죄하여 죽이려 했지만,
그분에게서는 아무런 죄목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하는 그리스도로서
십자가의 죽음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신앙인에게
그 믿음을 실천으로 보이라고 촉구합니다.
 
사실 이 땅에는 수많은 그리스도인, 기독인이 있습니다.
최고 권력자부터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인을 찾아보는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신앙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살펴보면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위한 신앙이며 실천입니다.
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꾸짖음처럼
하느님의 일은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합니다.
신앙을 실천한다는 것은 주로 교회에 다니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교회를 찾는다고 해서 결코 고난을 겪는 것도 아니며,
배척을 받고 죽음을 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그 조금의 불편함을 내가 겪었으므로, 그것으로 내 신앙을 실천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도와주시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축복해주셔서 만사형통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곳에는 저마다 자신의 일만을 꾀할 뿐 하느님의 일이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하느님의 일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일만을 생각합니다.
아마 이 땅에 그 많은 그리스도인이 도처에 널려 있음에도,
정작 하느님의 일, 하느님의 뜻은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던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꾸짖으십니다.
첫 신앙인 베드로, 교회를 그 위에 세우신 그 베드로더러 ‘사탄’이라 꾸짖으신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지 않는 신앙,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 신앙,
예수님의 길을 따르지 않는 신앙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사탄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건호 야고보 12-09-30 00:10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님 의 말씀.
지금도 말씀은 우리와 함께 있읍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없읍니다.
겉 날개에 달려붙어 있는 먼지는 털릴수도 있지만 털어도 털여 나가지 않는 보이지 않는곳의
그 먼지(다종"多種"의 그릇된 사고 방식)가 더욱 심각 함을 통감 합니다.

말씀을 제대로 실천하는 발 걸음이 비록 부족 하지만 먼 발치에서 나마
옳 곧은 말씀에 세습을 개을리 하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입니다.

우리 신앙인의 진실함 이라 하면 먼저. 우리사회 주변에서 횡행하는
적(敵)그리스도의 언행을 삼가 하여야 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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