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신앙마당 > 신부님 강론


 
작성일 : 12-08-23 12:18
12_08_12 연중 제19주일(나해) 교중미사 신부님 강론말씀
 글쓴이 : 신정동성당
조회 : 1,054  
연중 제19주일(나해)
 2012년 8월 12일(신정동, 박동호신부)
 요한 6,41-51
그리스의 신화에 시지프스가 있습니다.
꾀가 많은 것으로 명성을 떨쳤으나 욕심이 많고 속이기를 좋아했던 시지프스는
저승에서 벌을 받게 됩니다.
그가 받은 벌은 무거운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온 힘을 다해 그 큰 돌을 정상에 올려놓았나 싶으면, 미처 숨도 돌리기 전에 그 돌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시지프스는 처음부터 다시 또 돌을 굴려 올려야만 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가 사는 모습이
마치 저승에서 벌 받는 시지프스의 처지와 같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영장’이란 말은 “영묘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란 뜻입니다.
사람을 일컬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영묘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인 사람이
실제로는 비참한 노예가 되어 시지프스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경제활동’과 자본일 것입니다.
시지프스가 굴려 올려야 하는 무거운 돌과 같습니다.
자본과 경제활동은 삶의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그것이 주인이 되었고, 사람은 자본과 경제활동의 도구쯤으로 되어버렸습니다.
흔한 말로 사람 나고 돈 난 것인데도 오늘날 우리 모습은 마치 돈 나고 사람 난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가르치고 기른다는 교육도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돈벌이 여부만 따집니다.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생명도 산업 곧 돈 벌이에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사람 사이, 집단 사이의 조화와 질서를 꾀하는 정치도 경제의 시녀역할을 자임합니다.
법에 관해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언론도 산업 곧 돈벌이가 되어야 한다며 법까지 고쳐버렸습니다.
이 같은 우리의 모습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돈이면 안 되는 것 없고, 돈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
돈 되는 일은 무엇이든 하고, 돈 안 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삶의 주인이 아니라, 돈의 하수인, 돈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돈이 제일 힘 센 것이 되었고, 자본이 절대자가 되었습니다.
자본이 이 세상의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된 셈입니다.
 
1독서의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의 예언자였는데,
당시 임금 ‘아합’이 우상숭배에 빠져 백성을 그르치는 것을 보고
그를 꾸짖었다가 죽을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만일에 우리가 웅장하고 화려한 교회건물을 곳곳에 세우며, 입으로는 하느님을 부르지만,
실제로는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돈과 자본을 주인으로 섬기며 그 앞에서 벌벌 떨고 있다면,
우리 역시 우상숭배에 빠진 아합이나 북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것 하나도 없습니다.
이 때 하느님의 사람 예언자 엘리야는 차라리 목숨을 거두어 주십사 청합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당신 살을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으로 내어놓으셨습니다.
우리도 자신을 세상의 양식으로 내어놓으라는 모범입니다.
우리가 겉으로는 이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돈만이, 자본만이, 경제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나 살기 위해서는 남의 살이라도 먹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오늘 복음의 유대인들이 보인 태도처럼, 우리의 신앙은 수군거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본에 의한 인간의 노예화’를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 혹은 ‘세계화’이라고 그럴듯하게 부릅니다.
사람이 통제하지 않는 자유 시장, 경제 민주화가 없는 시장에는 2독서의 말씀처럼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과 악의”가 극성을 부립니다.
이 가능성은 가능성으로만 남아있지 않고, 여러 차례 실제상황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두고 불가에서는 아수라도 곧 늘 투쟁이 그치지 않는 세상이라 합니다.
그 곳에서 너그러움, 자비, 용서 따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영묘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사람이 아수라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과 양심과 자유의지가 용납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도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시 권고합니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오늘날 성령의 인장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고민합시다.
 
 
 

최건호 야고보 12-08-23 22:13
 
우리가 올바른 희망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사회.
스스로 아수라장의 원천이 되여서는 아니 되겠읍니다.
"약삭빠른 고양이 밤눈 어두운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읍니다.
자신부터 자중 자제가 필요하다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