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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7-31 12:25
12_07_29 연중 제17주일(나해) 교중미사 신부님 강론말씀
 글쓴이 : 신정동성당
조회 : 1,072  
 연중 제17주일(나해)
 2012년 7월 29일(신정동, 박동호신부)
 요한 6,1-15 
 
어떤 신문에서는 뜬금없이 우리가 20-50클럽에 가입하여, 곧 선진국이 될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세계적인 장기불황, 혹은 대불황이라고 하며
우리도 안심할 수 없다고 점잖게 훈계합니다.
곧 시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다그칠 것입니다.
졸라맬 허리도 없는 처지의 애꿎은 평범한 시민들만 고달플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편 사상 최대의 경영흑자를 냈다는 거대기업을 이 신문은 홍보하며
그것이 마치 우리 모두의 경사인양 착각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문제의 심각함은 정도를 넘었다고 걱정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내수시장이 안정적이지 않을뿐더러, 환율변동에 취약하고,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 경제는 대불황에서 벗어날 창구가 없으며
그 고통은 고스란히 우리 평범한 시민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도시 가구 100가구 가운데, 16가구가 이미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는 조사도 있었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 4항은 이런 모습을 두고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정리합니다.
“인류가 이토록 풍요로운 재화와 능력과 경제력을 누려 본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 인구의 상당수는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사실 70억 인구 가운데 10억이 기아와 절대빈곤에 상태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리고 오늘날에도 선의의 뜻을 지닌 수많은 이들이
이웃의 굶주림과 빈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심각한 불균형을 개선하려고
불철주야 헌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들은 1독서에 등장하는 엘리사 같은 분이 그렇고,
복음의 예수님 같은 분이 그랬습니다.
엘리사는 주님 말씀대로 보리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으로 백 명이나 되는 사람을 나누어
먹이고도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도 오 천 명이나 나누어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의 빵을 남겼습니다.
모두가 배고팠으나, 엘리사와 예수님으로 인하여, 모두가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동기는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라는 2독서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만물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 어느 것도 내 것이라, 하다못해 내 능력으로 만들어낸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나만의 것이라 그 소유권을 배타적으로 주장할 수 없습니다.
만물을 모두의 것으로 여기고 나누면 아무도 굶주리지 않습니다.
실제 전 지구에서 생산하는 식량은 지구 인구의 세배를 먹이고도 남습니다.
나누지 않고, 팔아서 이익을 남기려니 창고에 쌓아두고,
그 사이 10억이 넘는 사람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것입니다.
 
만물을 하느님의 것으로 여기지도 않고, 우리 모두의 것으로 여기지도 않는 사람은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삼으려합니다. 또 그런 생각에 우리도 모르게 사로잡혔습니다.
이를 자본주의라 하고, 시장경제라 합니다. 더 많이 차지하려고 사생결단의 각오로 싸웁니다.
이를 우리는 ‘무한경쟁’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거의 대부분이 빈털터리가 될 때까지 이 경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탐욕에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1독서의 엘리사의 시종은 “이것을 어떻게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합니다.
백성들에게 내놓지 말고 우리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복음의 안드레아 사도는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합니다.
역시 “우리 먹을 것도 모자라지 않겠습니까? 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라는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는 개인에게서, 집단에게서, 사회에서, 국제사회에서, 어디서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 국가 이기주의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정치인이건, 경제인이건, 문화인이건, 종교인이건,
일부의 자격 없는 지도자들이 나부터 살고보자며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불법탈법도 개의치 않으며 탐욕을 채우려 하고, 우리는 이를 능력이라 묵인하거나,
그게 세상이라고 여기도 나도 끼어들면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모두가 그것을 세상살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까지 그래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바로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1독서의 엘리사처럼, 예수님처럼 나눔으로써
공존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결코 내 것이 아닙니다. 만물은 우리 모두의 것이며, 우리 후손의 것이며, 모두 하느님의 것입니다.” 아멘.
 

최건호 야고보 12-08-05 15:43
 
"얼르고 빰때린다"
"어중이 떠중이-."
"어물장 망신은 꼴뚜기 망둥어 - -".라는 속담을 들어본바 있었읍니다.
우리사회속의 단면 일수 있읍니다.

" - - - 설령 모두가 그것을 세상살이라 하더라도,우리까지 그래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바로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옳으신 말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