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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7-30 13:18
12_07_22 연중 제16주일(나해) 교중미사 신부님 강론말씀
 글쓴이 : 신정동성당
조회 : 1,034  
연중 제16주일(나해)
 2012년 7월 22일(신정동, 박동호신부)
마르코 6,30-34
 
 
公正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公平(치우침이 없이 공정함)하고 올바름’이라고,
또 正義란 말은 ‘올바른 도리’라고 설명합니다.
사람이 혼자 살 수 있다면, 공정이니 정의니 도리니 하는 것은 필요도 없습니다.
공정과 정의는 관계망이라 할 수 있는 사회와 세상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사회와 세상은 부분들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라,
각 부분들이 고유한 모습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하나의 사회, 하나의 세상을 구성합니다.
가족이나 직장이 그렇고, 지역사회가 그렇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따위의 영역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유한 모습을 지니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그 관계에 공정이니 정의니 도리니 하는 가치가 개입하는 것입니다.
이 공정과 정의와 도리가 힘 있게 살아있으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은 긍정적이어서
각 개인이나 부분뿐만 아니라 전체가 함께 발전합니다.
거꾸로 이 공정과 정의와 도리가 헌신짝처럼 내버려져 땅에 뒹굴게 되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은 부정적이어서
각 개인이나 부분 그리고 전체는 상처를 입을 뿐만 아니라, 심하면 쇠락하거나 소멸합니다.
그러니까 이 공정과 정의는 개인이든 부분이든 전체 사회나 세상이든
반드시 지향해야 할 절대적인 가치인 것이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세우는 일에
개인이든 집단이든 정치 분야든 경제 분야든 예외가 없음에도
오늘 예레미야 예언자는 그것이 특히 지도자들의 임무임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이든 하늘로부터 오는 권력이든,
그들에게는 권력이 부여되고,
그 권력은 그들에게 특별한 명예나 신분을 가져다주고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며,
그로써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권력이 양떼를 흩어버리고 몰아내며 잡아먹는 이리 떼의 폭력이 아니라,
그들을 보살피는 목자의 권력이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언자 시대 목자들은 오늘날의 각 분야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이 사회와 세상을 구성하는 구성원이나 각 분야를
파멸시키고 흩어 버리며 몰아내고 보살피지 않았음을
예언자는 ‘악한 행실’이라고 질책하며 그것을 하느님께서는 벌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백성을 돌보는 대신에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백성을 고통으로 음에 몰아넣으며,
공정과 정의를 내팽개친 지도자들의 악한 행실은
2독서의 말씀처럼 유다인과 이민족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에 기생합니다.
이 적개심은 때로는 이데올로기의 탈을 쓰고, 때로는 지역주의나 민족주의의 탈을 쓰고,
때로는 인종 및 종교의 우월주의의 탈을 쓰고 우리 주변에 나타납니다.
우리의 이 적개심에 기생하는 거짓 지도자들의 악한 행실은
사람과 사회와 세상에 끊임없는 장벽을 세움으로써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갑니다.
사람을 공생의 길보다는 소외를 길로 몰아넣고,
사회와 세상을 공동운명체보다는 전쟁터로 만들고,
자연을 생명의 터보다는 죽음의 황무지로 만들어가야
적개심이 자리할 수 있고, 악한 행실이 할 몫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지하철 광고에 좌익을 척결하기 위해 시민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곳곳에 암세포처럼 자라고 있는 불공정과 불의를 척결하고,
이제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세우자고 해도 모자랄 세상에,
좌익과 우익이라는 거짓 이데올로기로 국민을 편 가름하여
덕을 보려는 이들이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때만 되면 기승을 부리는 지역주의가 주기적으로 우리의 건전한 이성에 상처를 입히고,
혹세무민하는 일부 거짓 종교가 가증스럽게 그 교세를 넓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덕을 보는 이들의 악한 행실이 숨어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이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예수님께 다 보고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라고 하셨는데,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만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많은 군중이 가엾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양을 돌보는 목자가 그만큼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공정과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밝힙니다.
“교회는 결코 현세적 야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교회는 오로지 하나의 목적을 추구한다.
곧 성령의 인도로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오셨으며,
심판하시기보다는 구원하시고 섬김을 받으시기보다는 섬기러 오셨다”(사목헌장 3).
우리 신앙인의 몫은 세상에 진리를 증언하고, 구원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아멘.
 

최건호 야고보 12-08-05 14:06
 
아멘,

강육약식(야생동물세계만 지칭함).

- - - 편파적이지 않고 어두운곳과 그늘져 소외됨이 없는 우리 현실인지.
공정 정의로운 사회를 이끌어 가는데 나름데로 하고있는 역활이 소홀함은 없었는지
도리켜 세삼 생각을 일깨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