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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7-21 19:48
12_07_15 연중 제15주일(나해) 교중미사 신부님 강론말씀
 글쓴이 : 신정동성당
조회 : 1,070  
                                                                                             연중 제15주일(나해)
                                                                            2012년 7월 15일(신정동, 박동호신부)
                                                                            마르코 6,7-13
 
아모스 예언자는 이스라엘에 하느님의 선고를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이스라엘이 지은 죄 때문에, 네 가지 죄 때문에 나는 철회하지 않으리라”(2,6)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벌하려는 “이스라엘이 지은 죄, 그 네 가지 죄”는 무엇일까요?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하지 않아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바친 제사는 어느 때보다 장엄하고 화려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나는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배척한다.
너희의 그 거룩한 집회를 반길 수 없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과 곡식 제물을 바친다 하여도 받지 않고
살진 짐승들을 바치는 너희의 그 친교 제물도 거들떠보지 않으리라.
너희의 시끄러운 노래를 내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희의 수금 소리도 나는 듣지 못하겠다.”(5,21-23) 하십니다.
 
이렇게 “아침에 희생제물을 바치고 셋째 날에 십일조를 바치는데”(4,4)
하느님께서는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벌하시려 하십니다.
아모스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그 이스라엘의 쌓이고 쌓인 죄를 밝힙니다.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넘기고,
신 한 켤레를 빌미로 빈곤한 이를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다 짓밟고 가난한 이들의 살길을 막는다.”(2.6-7)
 
“공정을 쓴흰쑥으로 만들어버리고, 정의를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자들아!
성문에서 시비를 가리는 이를 미워하고, 바른말 하는 이를 역겨워한다.
너희가 힘없는 이를 짓밟고 도조를 거두어 가고,
의인을 괴롭히고 뇌물을 받으며, 빈곤한 이를 성문에서 밀쳐내었다.
그러므로 신중한 이는 이러한 때에 입을 다문다.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5,7-13)
한디로 ‘정의롭지 못한 사회’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 기를 못 펴는 사람을 내팽개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5,23)하십니다.
 
이 말을 전하는 아모스 예언자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임금님의 성소’ ‘왕국의 성전’ 운운하며
아모스보고 유다로 떠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저들이 저지른 죄악을 만천하에 고발하는 아모스를 좋아할 리 없었을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파견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회개하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오늘날 ‘더러운 영들’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회개하라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의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
신발은 신되 옷도 두벌은 껴입지 말라”는
예수님의 당부의 말씀에서 현실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에 사람들이 빵을 더 많이 지니려고 죽기까지 싸운다면,
여행 보따리가 터질 때까지 채우려 끝없이 경쟁한다면,
심지어는 자기 전대에 돈을 채우려 남의 전대를 털기도 한다면,
남의 옷을 벗겨 두벌 세벌 껴입으려 한다면, 그런 세상은 어떤 세상이겠습니까?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 하기보다는 차라리 야수의 세상이라 불러야 마땅할 것입니다.
 
Hobbes라는 사상가는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와 같다” 했습니다.
그러나 Hobbes는 인간의 본성이 원래 늑대와 같다는 뜻으로 이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사회를 벗어나면 늑대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홉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였습니다.
마치 먹잇감을 놓고 사생결단 싸우는 동물의 세계처럼,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라고 말한 것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정의와 공평, 서로 위하는 마음,
특히 힘없고, 약하고, 기를 펴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없는 세상은
인간의 사회가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복음말씀에서 쫓아내야 할 마귀, 더러운 영들은
‘정의와 공평,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흘러넘치는 사람 사는 사회’를 내팽개치고,
그 대신에 ‘먹잇감을 놓고 혈투를 벌이는 전쟁터’로 몰아가는 모든 사악한 시도들일 것입니다.
그럴듯하게 경쟁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도,
무력증강만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군수산업자본주의도,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일부 탐욕스러운 지도자들도,
오늘날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할 사회’가
그렇게 야수의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데도,
화려한 성전에서 하느님께 번제물, 희생제물을 바치며 요란한 노랫소리,
거문고 가락을 뜯고 있다면, 마땅히 회개해야 할 터입니다.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먹잇감을 놓고 혈투를 벌이는 늑대의 세계’를 향해 가고 있는가?
스스로를, 우리 주변을, 세상을 둘러봅시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라” 아멘.
 

최건호 야고보 12-07-23 21:44
 
우리 신부님의 차원높은 강론의 말씀을 담아 가렴니다.
최건호 야고보 12-07-23 22:29
 
"정의와 공평,
서로 위하는 마음,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

아울러서 참으로,깊이 자성할 현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