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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6-19 13:03
2012_06_17 연중 제11주일 교중미사 신부님 강론말씀
 글쓴이 : 신정동성당
조회 : 1,064  
연중 제11주일(나해, 박동호신부, 신정동성당)
2012년 6월17일
 에제키엘 17,22-24; 2코린토 5,6-10; 마르코 4,26-34
 
사방을 둘러보아도 도무지 빠져나갈 곳이 없을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개인으로서는 너무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억울하게 실직을 했는데, 중한 병이 들고,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데다가,
가족들의 삶이 황폐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라 합니다.
절망이란 말로도 형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쌍용 자동차의 해고 노동자들 가운데 무려 22분이 돌아가셨는데,
그 가운데 무려 17분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회사와
시민을 섬기는 일에는 관심 없고 대신 자본의 종이 된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한 개인은 불행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개인으로서만 그런 것 아닙니다. 사회 전체를 놓고 볼 때도 그럴 수 있습니다.
공동선을 실현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정치는 터무니없는 사상논쟁으로 실종되고,
사람을 위해 기여해야 할 경제가 자본에 충실히 봉사하는 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몰립니다.
빈부격차는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오히려 급속하게 커지기만 합니다.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무자비하게 억압하여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독재시대 한 몫을 했던 사람들이나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던 사람들이
지도자 행세를 하며 태연하게 다시 등장합니다.
국민의 혈세 수십조원을 써가며 산하를 황폐화시켰고, 무기를 사들이려 합니다.
공공부분이든 민간부분이든 상상 초월의 막대한 부채는 짊어지기 힘들 정도로 무겁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국가의 실패, 국가의 절망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이 국가의 실패와 절망은 대부분의 시민을 삶을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내몰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공동체는 이 위기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짧은 근현대사를 떠올려도 어렵지 않게 그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1910년 일본의 강점이 그렇고, 1950년 한국전쟁을 그랬고, 1998년 소위 IMF가 그랬습니다.
그 때 그런 일이 있었다면, 모습은 달라도 내용은 같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이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독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인데, 그 배경은 바빌론 유배시절입니다.
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바빌론으로 붙잡혀 갔으며,
예루살렘은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국가의 실패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주변 강국의 힘을 빌려 왕국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만,
오히려 그 주변 강국에 의해 패망하고, 평범한 이스라엘인들은 고통의 늪에 빠집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런 절망의 상황에서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우실 희망을 전합니다.
 
복음의 예수님이 활동하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지도자들은 로마에 부역함으로써 그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려 했지만,
보통의 이스라엘인의 삶은 고통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절망의 상황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자라고 있다는 희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2독서의 바오로 사도 역시
절망에 무릎 꿇지 말고, 주님 마음에 들고자 애를 써야 하며,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그리스도인을 격려합니다.
 
오늘의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교회는 슬픔과 고뇌에 빠진 이 사회와 이웃에게 기쁨과 희망의 표지가 되고 있습니까?
오히려 손가락질 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잘 것이 없어서 가난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있는데
교회가 하느님께 드리는 경신례(敬神禮)를 위해서 값비싼 장식을 마련한다든가,
화려한 성전(聖殿)을 짓는다든가 하는 일은 교회의 신앙이 아니다.”(사회적 관심 31항)
하느님을 섬긴다면서 사회정의는 외면한다면 우리 교회는 교회의 길에서 일탈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두고 교회헌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육신 안에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안에서 그 혼이 되어야 한다.”(교회헌장 38항)
우리는 세상의 혼이 되어,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표지”입니까?
아니면,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똑같아’ 혹은 ‘믿는 사람이 더 해’ 하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세상의 혼은 죽은 혼이며, 그렇게 혼이 죽었다면,
세상은 혼이 없는 육신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버지, 저희가 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인내로 가꾸어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아버지 말씀이 저희 삶에서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아멘.
 

최건호 야고보 12-06-25 21:24
 
"아멘-"
구구 절절 옳으신 말씀 입니다.

힘겹고 미약하지만 신부님의 강론의 말씀을.

정신일도(精神一到) 되여 지기를 기원(祈願)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