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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4-16 12:33
14_04_ 06 사순제5주일 신부님 강론말씀
 글쓴이 : 신정동성당
조회 : 848  

사순 제5주일(가해, 박동호신부, 신정동 성당) 

                                                             2014년 4월 6일 

                                                  요한 11,1-45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은 그리 대단한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고통스러운 노예생활을 했고,

수만 명이 바빌론으로 끌려가서 치욕스러운 유배생활까지 했습니다.

그 치욕과 고통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탄원합니다.

그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탄원에 응답하셨습니다.

 

 

탈출기(3,7-10)에서는 당신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셨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고, 그들의 고통을 알고 계셨으며,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오시겠다고 합니다.

바빌론에서 유배생활하며, 깊은 구렁 속에서 부르짖는 당신 백성에게

하느님께서는 에 제키엘 예언자를 통해서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겠다....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리겠다...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고 응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셔서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는

(이사야 61,1-2; 루카 4,17-20) 이사야 예언서를 읽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모든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십니다.

사실 복음 전체는 예수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우리 가운데서 이루셨음’을

밝히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루심’ 가운데 하나로 예수님께서는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것입니다.

 

오늘 들은 하느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항상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과 당신 백성, 예수님과 라자로의 관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고통을 보시고, 들으시고, 알고 계시며, 무덤을 여시고,

끌어올리시고, 데려다 놓으시는 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까마득히 멀리 떨어져 계시면서,

당신 마음 내키는 대로 우리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어떤 경우라도, 우리가 무덤에 갇혀 있더라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당신의 뜻대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늘 복음이 전하는 것처럼, 라자로의 죽음에, 그리고 사람들의 슬픔을 보고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며, 눈물을 흘리시는 분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당신께 돌아가 탄원하면 들으시고, 보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기억해야 할 또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영’입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당신의 영을 넣어 주어 살리시는 분’입니다.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래서 “하느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의 안에

사시기만 하면,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된다.” 고백합니다.

 

정리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는 공동체와 모든 사람과

그 어떤 경우에도 함께 하시며, 성령을 보내셔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교회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사람과 사회는 항상 그 신앙의 길을 걷지 않습니다.

사람의 사회의 부족함과 오만함 때문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치욕스러운 바빌론 유배생활을 하게 된 것이,

오만해져서 하느님의 길, 곧 사랑과 정의의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꾸짖습니다.

구약의 예언서들은 공동체가 특히 지도자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의 길을 버리면,

반드시 멸망한다는 것을 준엄하게 경고하고 꾸짖습니다.

그렇지만 구약의 예언서들은 그렇게 오만함과 불의로

멸망하여 고통과 시련을 겪게 되었더라도, 회개하여 하느님의 길로 다시 돌아온다면,

그분께서 반드시 일으켜 세우신다는 희망을 불어넣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구약의 예언을 실현하신 분입니다.

 

우리도 일제 강점의 혹독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고, 남북분단의 시련을 겪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에 하신 것처럼,

우리의 아픔을 보시고, 아시고, 들으시고, 일으켜 세우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상처와 시련에 마음 아파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살리고자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 이 땅의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능력, 우리의 돈, 우리의 총과 대포가

우리를 지켜주고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믿고 따랐습니다.

능력을 키우면 우뚝 설 수 있고, 돈만 많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총과 대포로 강하게 무장하면 평화로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직도

그렇게 믿고 살아야한다고 일부 탐욕스럽고 불의한 지도자들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빌면 ‘육 안에 있는 자들’이 되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그 길이 얼마나 무모하고 허망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 도 분명해집니다.

저마다 능력을 키우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많은 사람이 무능하다고 손가락질 받고 뒤쳐져 허덕입니다.

저마다 돈을 불리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가난한 사람이 더 많아집니다.

양쪽이 총과 대포와 첨단무기를 갖추려고 막대한 돈을 쓰면 쓸수록,

충돌의 위험과 갈등만 높아지고, 평화는 점점 멀어집니다.

사회에는 사랑 대신에 죽기 살기가, 정의 대신에 불의와 불법이,

공정 대신에 불공정이 기승을 부려, 만연해졌고,

그리고 그 대가는 많은 사람과 사회의 고통과 시련이며, ‘안녕하지 못함’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집니다.

이 땅 한 가운데서 ‘하느님의 누룩’이 되는 것,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빌면,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짐을 새롭게 해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니, 용기를 내서 하느님의 누룩이 됩시다.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의 길을,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뒤따라갑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