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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21 17:48
13_04_ 14 부활 3주일 교중미사 신부님 강론말씀
 글쓴이 : 신정동성당
조회 : 841  
부활 제3주일(박동호신부, 신정동)
2013년 4월 14일
요한 21,1-19
예수님께서 붙잡혀 가실 때 그분을 버리고 달아났던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분이 심문을 받을 때 사람들에게 그분을 모른다고 잡아떼었던 베드로였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인 그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있던 그들이었습니다.
그 사도들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기에,
예수님처럼 대사제한테 심문을 받게 되었을까요?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하다고
대사제에게 자신있게 말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아예 예수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는 것이 무슨 자격이나 된다는 듯이, 기뻐하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라고 밝힙니다.
게다가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도 그 증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자기들이 하는 일이 그냥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요, 성령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변화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그들은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 보면 예수님만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어둠과 두려움과 허무함에서 일어난 것, 곧 부활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나타나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한다면, 당신 양들을 돌보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두 번 배반하고, 두 번 버리고, 두 번 도망갈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령이 함께 하시니, 죽음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그렇게 주저하지 않고 나를 잡아가라고 두 팔을 벌리고,
사람들이 허리띠를 매어주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더라도,
그 수난의 길을 피하지 않습니다.
그들보다 앞서 스승께서 걸어가신 길이며,
그곳에 가면 스승 예수님을 만날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라고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독서 말씀이 전하는 것처럼, 자신들도 살해된 어린양과 같은 신세가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렇게 살아야만, 또 그렇게 죽어야만,
하느님의 권능과 부와 지혜와 영예와 영광과 찬미를 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권능은 어린양을 살해했지만,
하느님의 권능은 세상이 낙인한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이들을 살리셨습니다.
세상의 부는 어린양을 굶주리게 했지만,
하느님의 부는 가난하고 배고픈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세상의 지혜는 자기들의 성전과 민족을 위해 힘없는 한 사람쯤 아무렇지도 않게 죽였지만,
하느님의 지혜는 약하고 보잘것없는 보통의 사람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세상의 힘은 피조물을 함부로 다스리고 억압하고 폭력을 휘둘렀지만,
하느님의 힘은 피조물을 돌보며 그 몫을 다하도록 격려했습니다.
세상의 영예와 영광은 무력과 금력으로 보통의 사람들을 무릎 꿇게 했지만,
하느님의 영예와 영광은
어둠과 억압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해방하며 빛을 비추어 힘차게 걷게 했습니다.
사도들은 깨달았습니다.
바로 스승 예수님께서 온 몸과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때문에 모욕을 당할 자격을 인정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불편한 길, 가시밭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살 길이라 아무리 닦달을 해도,
그리스도인만큼은 상생을 고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불의와 적당한 부패와 적당한 이기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세상살이라 아무리 강요하더라도,
그리스도인만큼은 정의와 사랑의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사일을 발사한다고 으르렁거리고, 군사력으로 제압하겠다고 세상이 결의를 다지더라도,
그리스도인만큼은 평화를 위해 십자가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설이긴 합니다만, 우리 사회에서 참 그리스도인은 사회부적응자이기 십상입니다.
이 땅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도, 사도들이 다시 오셔도 그랬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제자인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십니다.
아멘.
 
 

최건호 야고보 13-07-01 23:10
 
"말씀'을 받들어 따라.
살아 가노라면.
역경 속에서도 "말씀"을 이루어 가는.
보람스러운 삶으로.
 그 뜻으로 마감이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힘을 보태야 겠읍니다.